플레이아웃사이드가 여러분께 편지를 보내드려요. 정기적인 건 아니고, 저희가 보내고 싶을 때 보내드립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베가본더', '오프리', '헤나'가 각각 한 편씩 글을 씁니다. 형식은 없고, 내용은 아무 내용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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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본더(Vagabonder)의 편지💌
"2년 만에 찾아온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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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웃사이드에게 2년만에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2020년 여름은 코로나로 인해 모든 활동 자체가 막혀버렸습니다. 하지만 2022년 여름은 다시 청소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도 기대가 되는 그런 여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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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올해 2년만에 1박 2일 여름캠프가 진행 되었습니다.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캠프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쳐 있던 청소년들에게 조금 숨이 트일 수 있는 캠프 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자연캠프'라고 지었습니다. 스케줄이 꽉 찬 캠프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와 향기 그리고 바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는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단지 선택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코칭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고 캠프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우리들의 생각 그대로 였습니다. 어떠한 통제도 없이 청소년들은 나이에 상관 없이 함께 즐기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쉼을 기다렸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2년만의 캠프 였기 때문이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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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는 많이 생각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청소년들에 대한 다양한 경험은 매우 부족 합니다. 다양한 삶이 있고 그러한 삶은 매우 존중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길을 선택 하였다고 해도 응원 보다는 “쉽지 않을 텐데"라는 말들 뿐 입니다. 경제 성장이 멈춰버린 지금 청소년들은 더욱 치열하게 성장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1%가 되기 위해 누군가를 이겨야지만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등등 성공을 위해 그리고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도 누군가를 짓밣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안에들어가는 선진국 입니다. 하지만 교육에 있어서는 매우 후진국에 있습니다. 교육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매년 꼴지 입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는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조금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경쟁 하지 않아도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떠한 직업도 귀천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 입니다. 지금의 청소년세대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전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시대도 예전과 만찬가지로 똑같은 사회가 될 것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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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웃사이드교육협동조합"
플레이아웃사이드를 시작하며 처음에는 청소년아웃도어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고 즐겨 했기 때문에 아웃도어교육이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작을 하면서 아웃도어 뿐만 아닌 인문학, 상담 등등 다양한 솔루션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할 사람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웃라인을 잡고 추상적인 비전을 제가 아는 분들에게 제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만찬가지지만 플레이아웃사이드는 전임을 할 수 없고 페이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일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청 드린 분들께서 플레이아웃사이드의 취지를 좋게 봐주셨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캠프도 진행 될 수 있었고 아웃도어에만 국한 되지 않고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것은 그동안 아무리 비영리 단체하고 하여도 결국 한명의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수직적인 문화에서 수평적으로 문화로 가기 위해 협동조합이라는 타이틀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만의 의견이 아닌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다름을 어떻게 하나의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느려보이지만 협동조합이라는 함께 협동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의 생각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하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반 협종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 두가지가 있습니다 일반 협동조합은 영리법인격으로 보고 사회적협동조합은 비영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는 비영리적인 사회적협동조합에 적합해 보이지만 교육부 등 제약을 받을 수 있고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해 우선적으로 일반 협동조합으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방향은 형태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을 지속하기 위해 후원과 영리적인 수익으로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풀타임 활동가의 급여와 운영비(약 300만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익사업 또한 개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굿즈를(티셔츠, 아웃도어용품 등) 그리고 프로그램을 일반에게 제공하여 수익을 얻습니다. 현재까지는 모든 활동에 인건비를 받지 않고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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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웃사이드교육협동조합 활동에 관심 있는 기관과 단체들에게 늘 열려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관계적으로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아웃도어라는 활동을 사용하였습니다. 자연속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 합니다. 자연의 방식을 배움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자연의 방식은 아름답지만 사람의 기준에서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의 방식을 경험하고 배움으로서 자신의 삶 속에서의 방식을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플레이아웃사이드가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가장 큰 경험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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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리(Ofree)의 편지💌
"물을 싫어하는 사람의
물속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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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북면 계관산 자락에서 햇수로 이 년째 아이들과 먹고 자고 함께 지내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가 돌아와 가방 팽개치고 자유의 몸이 되는 그 시간 이후부터 아이들과 노는 일이 나의 일이다. 지난 여름을 돌아본다. ‘이 더위에 무얼 하고 놀아야 할까?’ 여름 내내 한 고민이다. 가평의 여름은 나기에 만만치 않다. 산이 많고 숲이 좋다지만 그만큼 온갖 벌레도 많고, 산 옆으로 여러 갈래로 굽이치며 흐르는 계곡물이 좋다지만 또 그만큼 습하다. 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자연이 좋아 피서철마다 놀러올 때, 여기에 사는 나는 이곳의 기후와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끈적한 땀이 뻘뻘 흐르는 날씨에 나는 어떻게 하면 안 움직이고 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은 널찍한 거실을 떠올리며, “얘들아, 오늘은 바깥놀이 말고 거실에서 안놀이 어때?” 제안을 던지면 단박에 돌아오는 대답은 “싫어요, 지옥섬 가요.”였다.
우리 마을 뒤로는 가평천이 흐른다. 계곡의 이쪽으로는 너른 자갈밭이 있고, 저쪽으로는 계관산이 병풍처럼 서 있어 광활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내. 그 물 한가운데 밖으로 뾰족 튀어나와 아주 작은 섬처럼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아이들은 언제부터 지옥섬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지옥섬을 정말 좋아했다. 지옥섬에 가자는 얘기는 물놀이를 하자는 말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물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물이 그리 좋을까? 나는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부터 긴장이 된다. 나에게는 얕게는 무릎, 깊게는 허벅지까지 물에 담갔다가 나오는 게 물놀이다. 한번은 성화에 못 이겨 수영을 배우러 갔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앞으로 나가지 않아 배우기를 이틀 만에 그만두었었다. 물속에 들어있는 것 자체가 공포인데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니 몸이 앞으로 나갈 리가. 언젠가 여름 휴가 때에도 수영장 딸린 숙소에까지 놀러가 몸에 물 한 방울 적시지 않고 물 밖에서 햇볕만 쪼이다가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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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섬 가자는 말에 나는 마지못해 물에 가지만 아이들은 물 밖에서부터 벌써 즐겁다. 물가로 걸어가는 동안 벌써 표정은 상기되어 있고 걸음은 가볍다. 물녘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놀기 시작한다. 제1의 아해는 물속에 풍덩 몸을 던지고는 물 위로 드러누워 저 좀 봐봐요, 저 좀 봐봐요, 외친다. 영락없는 수달이다. 제2의 아해는 자갈밭에서 판판한 돌부터 찾는다. 그러더니 몸을 기울여 힘껏 물수제비를 뜬다. 며칠 전만 해도 두 번도 힘겨워 하더니 이제는 열 번도 넘게 수면 위로 돌을 튕긴다. 제3의 아해는 오른손에 컵 하나 들고 물속을 유심히 살핀다. 내 눈에는 도무지 안 보이는 것이 아이의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맨손으로 잡았다며 모래무지 여섯 마리를 내 눈앞에 내민다. 아이는 호기롭게 자랑하고서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아량까지 보여준다. 제4의 아해는 물에 젖는 건 싫다면서도 나에게 물보라를 날린다. 오들오들 떨면서 물 밖으로 나가고도 다시 물속으로 들어와 오목하게 손바닥을 모은다. 물은 싫지만 물은 좋은. 이상한 아이다. 제5의 아해는 나처럼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지옥섬에 누워 눈살을 한껏 찡그린 채 일광욕을 하는 모습이다. 저만의 물놀이인 것이다.
물기슭에서 아이들 노는 것을 보다가 한걸음 한걸음 물로 다가가 보았다. 다짜고짜 우오앗 하고 아이들이 물세례를 퍼붓는다. 옷이 흠뻑 젖는다. 하-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세례. 등을 돌려 도망가자 아이들이 무섭게 쫓아온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빠른 속도로 일제히 다가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보인다. 자연에 가까운 천진한, 온 세상을 가진듯한 행복한 얼굴이다. 이내 내게도 행복감이 찾아온다. 밀려오는 감동을 담아 나도 아이들에게 물폭풍을 선사해준다.
아이들과 부대껴 한참을 바동대니 금세 녹초가 된다. 발목물에 누워 푸른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는 조각구름을 보고 있으니 온통 평화롭다.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 본다. 물과 물, 돌과 돌, 나뭇잎과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분명히 있었던 소리들, 그러나 잘 듣지 못했던 소리들. 귀를 좀 더 기울일 무렵, 철퍼덕하고 산통을 깨는 소리. 아이들이 퍼붓는 물줄기에 콧구멍이 아리다.
올 여름, 틈만 나면 물가로 나갔다. 보통 물놀이는 미리 계획하지만, 갑작스런 물놀이가 더 많았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아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날씨에는 물놀이를 하면 십중팔구 감기에 걸리겠다 싶은 날에도 아이들은 서슴지 않았다. 오늘은 무릎까지만 들어가자, 그 위로 젖으면 올해에는 더 이상의 물놀이는 없다, 라는 협박에도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물로 들어가 버렸다. 물과 함께한 아이들의 여름나기.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그렇게 물을 싫어하던 나도 어느 정도 물과 친숙해져 버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몹시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게 되었던 것 같다. 가을에 접어드는 요즘, 이제는 정말 날씨가 쌀쌀해졌다. 지난 여름의 마지막 물놀이를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뭔 마지막 같은 소리냐며 또 한번의 물놀이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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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나(Hena)의 편지💌
"여름, 먹은 것을 떠올리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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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언니가 내 안부를 살피며 집으로 떡과 복숭아를 보내주었다. 여름을 잘 담은 과일 선물이라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집에서 잘 안챙겨먹는거 어떻게 알고 이렇게 감동을 주나. 둘 다 너무 맛있었다. 배송된 선물 사진을 찍으면서 언니와 가볍게 나눈 말들을 곱씹어봤다. 최근에 집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전보다는 잘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성장한거야-" 언니의 말이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마음에 여유를 주는 말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복숭아를 하루에 하나씩 잘라 먹었다. 달고 시원했다. 삶의 규모가 커질수록 추가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새삼스러운 것들이 과일이다. 언젠가는 내 돈으로 철따라 과일을 사는 날도 올 것이다. 덕분에 회사에 가서도 힘이 났다. 이제 좋아하는 과일이 뭐냐고 물으면 복숭아라고 답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내리는데 옆 파티션에서 근무하는 상무님이 묵직한 종이가방을 내 앞에 쿵 내려놓았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점심에 집에 다녀오면서 복숭아 두 알을 챙겼다고 하셨다. "처제가 집에 오면서 복숭아를 많이 가져왔어. 자취하는 데 가서 먹으라고." 나는 동그래진 눈을 하고 있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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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살피러 고향인 부산에 다녀왔다. 여름 동안 세번씩이나 갔으니 스무살에 상경한 이후로 가장 자주 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고향에는 아주 좋은 것들과 아주 싫은 것들이 같이 있다. 나는 매번 그렇듯이 아무것도 좋거나 싫지 않은 사람처럼 다녀올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엄마랑 같이 강아지 산책을 다녀왔다. 아주 더운 날씨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안 먹던 밀면 생각이 났다. 서울 사람들은 내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많이 먹어봤느냐고 묻는데, 사실 나는 엄마를 닮아 찬 음식을 잘 못먹는다. 추위도 많이 타고 위장도 약하다. 엄마도 그러니까 밀면 안먹겠지? 하고 물었는데 비빔으로는 먹는다고 했다. 없어서 못먹지 왜 안먹냐고. 그러고보니 엄마랑 밀면 먹는 건 처음이었다. 어릴 때는 밀면이 질기고 퍼석해서 먹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먹었더니 속에 있던 니글니글한 느낌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고 아주 상큼했다. 이건 정말, 나이가 든 게 확실하다. 그래도 나는 전부터 애늙은이 소리를 많이 듣는 입맛이었다. 가끔 열무국수나 메밀막국수를 찾았던 것도 생각이 난다. 어떤 곳은 정말 맛이 없지만 이번 여름에 먹은 밀면은 쫀득하고 가벼워서 서울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났다. 서울에는 그렇게 맛있는 집이 많이 없는 데다가 혼자서 괜히 찬 걸 먹으면 반도 못먹고 배가 아파서 후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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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온 날에 연남동에서 친구 Y를 만났다. 어디서 메론을 잔뜩 받았다며 제발 한 덩이만 가지고 가라고 하기에 내가 그쪽으로 갔다. 메론을 얼마나 정성스레 포장했는지 종이가방이 아주 단단해보였다. 종이가방을 받아들고 오면서 ‘메론이 무슨 맛이더라?’ 생각했다. 집에서 메론을 손질해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냉장고에 넣은 채로 일주일을 보냈다. 완전히 까먹고 있다가, 주말에 잠에서 깨자마자 번뜩 하고 떠올랐다. 설마 상하진 않았겠지 걱정하면서 냉장고까지 기어가서 겉면이 약간은 쪼그라든 메론을 꺼냈다. 다행히 자르기 전 상태로 보관해서 먹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전에 애인이 집에서 파인애플 자르는 방법이라며 칼질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브이로그에 쓸거라며 영상을 찍어놓은 게 있어 더듬거리는 손으로 칼질을 따라해봤다. 생각보다는 쉽게 잘라서 맛있게 먹었다. 멜론 한 덩이는 복숭아 하나보다 훨씬 크고, 훨씬 과즙이 많고, 훨씬 달았다. 두세곳의 밀폐용기에 나눠 담아놓고 내리 삼 일을 먹었다. 생각해보니 전에 Y와 같이 살 때도, 그의 어머니가 메론을 보내주셔서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난다.
나는 규칙적이고 단순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최근 얼마동안은 제법 그렇게 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려면 매일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난 매일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고민이 많다. 단순히 살이 빠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면역력이 자꾸 무너진다. 우선 체력을 길러보려고 헬스장에 다니는데 만나는 트레이너나 운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모두 나를 걱정했다. 아주 살이 찐 것도 아니고 몸에 수분이 적은 것도 아닌데 근육이 지나치게 적어서 심각한 마른 비만이다. 문제는 내 활동량이 아니라 단백질 부족이었다. 뭐라도 먹으면 덜 걱정일 문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채식주의자가 아닌데 도저히 고기를 못먹을 것 같은 상황이 종종 생긴다. 대부분 혼자 있을 때다. 혼자 있으면 같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먹는 음식에 집중을 하게 되니까, 그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자꾸만 떠오른다. 고기가 되기 전에 살아있었을 동물들의 숨소리나 눈빛 같은 걸 상상한다. 그 생명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아주 착취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먹는 것이 너무 어려울 때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았다.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나의 먹을 것을 성실히 챙기는 이유도, 내가 혼자서는 잘 먹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에 대해 예민한 편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먹는 것에 관련된 기억 중에 행복했던 것들로는 뭐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친구들과 함께일 때 라고 답했다. 벅적한 분위기에서는 나도 먹을 것이 많은 파티를 곧장 즐겼던 것 같다. 스무살에 혼자 상경해 같이 살던 친구들과 야식 먹던 기억, 방학에 시골 교회로 놀러가 농사를 돕고 마을 아이들과 잔치음식을 해 먹던 기억, 친구들이 성경학교를 진행하다 지쳐서 들어오면 간식을 내어주고, 밥을 차려놓은 나는 뿌듯해하고 그랬던 기억. 내 요리를 먹은 후배들이 너무 맛있다고 해주면 정말로 행복했던, 나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는데 앞에서 먹는 것만 봐서 배부른 게 뭔지 알 것 같았던 기억. 내가 그 친구들을 사랑한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지고 우리가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던 기억. 그런게 나에게는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먹는 것 보다는, 먹이는 것을 더 좋아했네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왠지 투명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중요한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았는데 뭘 잃었던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그동안 먹은 것을 떠올리면서, 아주 정신없이 울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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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웃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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